주례사(제자조범석군)
사랑하는 제자 조범석군과 그의 신부 김준아양을 위한
주 례 사
한해의 희망이 시작되는 좋은 계절에 두 사람의 결혼식에
바쁘신 중에서도 이렇게 성황을 이루어주신 친지 및 하객 여러분께
양가혼주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설레는 사람은 이 앞에 선 신랑신부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도 가슴 살렘을 억제하기 어렵습니다. 조금 전 제가 이 자리에 섰을 때, 하객 여러분은 자못 놀랐을 것입니다. 어찌 주례가 저렇게 젊었을까?
요즘은 가전제품이든 사람이든 애프터서비스가 중요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젊은 제가 연세 든 어른보다 앞으로 신랑신부에게 더 많은 시간동안 행복한 삶을 이끌어 주는 애프터서비스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몇 번이나 주례를 고사했지만, 결국 끈질긴 제자의 압력에 못 이겨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주례석에 서게 된 것입니다.
12년 전 여의도고등학교 3학년 1반 교실에서
신랑 조범석군과 저는 담임과 제자의 인연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조범석군은 차분하면서도 정말 가슴이 깊고 따뜻한 제자였습니다.
가슴 속에 품은 열정이 남달랐고,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가 보통이 아니어서
언젠가는 이 나라의 큰 재목으로 성장하리라 믿어왔습니다.
참으로 필연의 만남은 억겁의 세월을 두고서도 다하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멀리 과거의 사람들을 둘러보면,
베아트리체 없이 단테는 한낮 사색가였을 뿐이지, 세계 철학의 거두로 우뚝 서지 못했을 것이며, 석가를 아난을 만나 비로소 깨달음의 성인이 되셨으며, 세 번씩이나 배신한 제자를 용서한 예수도 베드로로 인해 큰 성인이 된 것입니다.
신랑 조범석군과 신부 김준아양은 중학교 동기동창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났고, 오늘 백년해로를 맹세하는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예약된 만남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소중한 만남이 영원히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 생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금 앞서 인생을 걸어가는 선배로서 몇 가지 당부하고자 합니다.
부부는, 첫째로, 상대방의 기를 살려주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기를 꺾어버리면 남편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내 역시 남편에게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때, 행복에 빠지고 더욱 충성을 맹세하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선 항상 상대방의 장점만을 보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하루에 세 번만 칭찬하면 더 잘 하려고 애쓰고, 항상 자신감에 찬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반쪽을 찾아 완전한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서로에게 실망하여 화도 나고 짜증도 나게 되며
심하면 그만 살겠다고 야단을 부릴 때도 생기게 됩니다.
옛날에는 시집가면 죽었구나 생각하고 시집갔는데, 시집 가 보니 그래도 살만해서 웃고 사는데, 요즘은 좋은 일만 잔뜩 기대하고 시집장가 가고,
가 봐도 썩 멋진 일만 기다리고 있지 않아 후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행복을 찾고
어떤 못된 일이 생기더라도 참고 견디고, 모두가 내 책임이다 하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는 일은 결코 없게 될 것입니다.
여기 모인 하객들께서는 오늘 두 사람의 결혼에 열렬히 박수를 보내지만
내일만 되면 괜한 심보를 부릴지 모릅니다.
왜 바보같이 마누라에게 쥐어 사나? 왜 허구한 날 남편에게 죽어 사나?
니가 얼굴이 못났냐? 배운 게 없냐? 하면서 싸움을 붙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귀 딱 막고 오늘 이 자리의 금석같은 맹서를 결코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족은 둘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부모님도 가족이요, 형제도, 친구도 가족입니다.
이 세상은 아담과 이브만이 살아가는 에덴동산도 아니고
모두가 어울려 살아가는 넓디넓은 광장입니다.
상대방에게 소중한 모든 것은 나에게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첫 번째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남편은 아내요, 아내는 남편입니다.
두 번째는 부모님을 자식보다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부모님께 불효하고 자식에게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자식이 어긋나고 불효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행복은 멀리 사라지게 됩니다.
이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오늘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분명히 내일도 또 내일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순신 같은 아들 하나에, 세종대왕 같은 아들 또 하나 낳고
내친김에 신사임당 같은 딸 하나만 더 낳아서
둘이 손잡고 늘 좋은 생각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행복은 항상 그대들 곁에서 춤추며 머물고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희망찬 출발을 다짐하는
영원히 사랑하는 제자 조범석군과 신부 김준아양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주례사를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3월 6일 주례 전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