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나의이야기

교육 정책과 메디치효과

청오 2010. 12. 19. 23:59

 

 

교육 정책과 메디치효과

 

 

서울시교육청은 12월 21일에 실시되는 중학교 1,2학년 전국연합학력평가 시험을 보지 않고 대신 다양한 문학, 예술, 체육 체험학습을 실시하라고 각 학교에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그동안의 서울교육이 학력 신장을 기치로 하여 경쟁을 심화시키고 학생들의 창의적인 인성을 길러내는데 소홀히 하였다는 진보주의 교육감의 시각이 정책으로 적극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 특히 현 정부의 경쟁과 선택의 교육을 중요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 진보주의 교육감으로서는 중앙 정부와의 교육에 동행하기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어차피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념도 정책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또 다른 길이 있어야 선택의 여유도 생기고 지혜로움도 생기고 발전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보수도 진보도 아닌 시각으로 보면 양측 모두에게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학력 신장도 중요하고, 경쟁도 중요하고, 학부모나 학생들의 선택도 중요하고, 수월성 교육도 중요하며 평준화교육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꼭 이렇게 한쪽으로 경쟁적으로 걸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죽도록 공부로 경쟁하도록 하고, 문학에, 예술에, 체육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고 싶은 아이들은 또 거기에서 인생을 찾도록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서로를 부정하는 듯한 교육 정책은 그저 국민들에게 혼란과 적응의 어려움이란 숙제를 남길 뿐이다.

요즘 지자체마다 특색있는 정책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눈물겹도록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변화와 개혁, 새로운 브랜드의 창출 없이는 주민들의 만족을 이끌어 내기도 외부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일도 실패하고 만다. 충남 서천군은 동백꽃 개화시기에 맞춰 매년 주꾸미 축제를 개최하는데, 이 기간 중에 전혀 다른 분야인 전국 당구대회를 축제기간 중 진행토록 유치했다. 얼핏 보면 주꾸미와 당구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당구 대회에 참가한 선수와 관람객들이 축제장으로 몰릴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고 축제기간 중 대회를 열기로 한 것인데,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이는 메디치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서천군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란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 과학자 시인 화가 음악가 철학자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데 일조한 현상을 의미한다. 최근 경영 현장에서도 메디치 효과가 성과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케이블TV의 혁신을 일으킨 ‘슈퍼스타K2’는 다큐멘터리와 오디션 프로그램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큰 성공을 이루었다. 이처럼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를 결합하여 성공을 이룬 사례들이 수없이 많다.

교육에서의 메디치효과는 없는 것일까? 나는 위에서 말한 학력 신장을 위한 전국연합평가와 문예체교육의 결합이 교육에서의 메디치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다. 물론 요즘에는 교육 수요자들이 사교육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지식 교육은 충분하다고 하면서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문학, 예술, 체육을 하기 위하여 더더욱 학교에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공부도 가르치고 문예체도 가르칠 수 있는 곳이 학교이기에 학교는 아직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동안 보수주의 공교육감 시대에는 학력 신장의 기치 아래 국, 영, 수 중심의 교육이 강조되어 왔다. 물론 공교육감은 서울교육을 위기에 빠뜨리고 중도 퇴진하는 불명예를 낳았다. 물론 이것은 학력 신장이라는 기치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남용과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중도 하차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교육 정책과 경쟁 중심의 교육이 강조되고 학력 신장이 중심이 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물론 경쟁을 통한 수월성 교육을 주장하고 있지만 교육수요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에도 큰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능력에 따른 사회, 공정한 경쟁을 통한 기회 확보, 선택의 자유가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의미 있는 정책처럼 들리는 것 같지만, 꼼꼼히 짚어보면 허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소외 계층,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차피 경쟁이란 있을 수가 없다.

요즘 진보주의 교육감의 철학이 담긴 서울시교육청의 문예체교육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 영, 수 중심의 교육은 소외 계층의 교육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 예술, 체육 교육도 강화되어야 하고, 소위 기타교육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2011년부터 적용되는 개정교육과정에서는 소위 기타 과목이 줄거나 폐지되고 학교마다 국, 영, 수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이러한 교육과정 편성에 제동을 거는 지침을 내려 보내고, 문예체교육의 중요성에 대하여 역설하고 있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 보장된 학교교육과정 편성 자율권을 학교가 지나치게 간섭하고 통제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알면서도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무시하고 지침을 내려 보내고 있다. 단위 학교장들의 불만도 크다. 말로만 자율권을 주고 실제는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한 불만이 담긴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1970년대 우리들의 세대가 다녔던 학창 시절을 잠시 회고해 보자. 그 당시에는 학생이었으므로 교육과정이 어떻게 편성되는 것인지 몰랐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음악, 미술 같은 예능 과목이나 체육, 교련 같은 신체 단련 과목, 암기과목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암기과목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옛날 국사시간에는 연대기별로 정리된 역사적 사건을 줄줄 외었고, 지리 시간에는 전국의 온갖 지명을 눈 감고도 찾아낼 수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다른 지역이나 북한 지역에까지도 그 지방의 특산물을 줄줄 외웠는데, 요즘 학생들은 부모들에게 이끌려 수없이 많은 곳으로 여행을 다녔지만 한산의 세모시도, 대구의 사과도, 청양 고추도, 태백의 석탄 등에 대한 정보도 머릿속에 담겨있지 않다. 경주나 부산이 어디쯤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물론 대학입시 제도가 가장 큰 원인이다. 중학생의 경우도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 부담이 없으니 국, 영, 수 외에는 별로 상관이 없다. 외고 입시에 모든 과목이 반영되던 시절에는 외고를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는 모든 과목은 중요하였지만, 지금은 외고 입시에서도 전 과목 성적이 반영되지 않으니 기타 과목은 찬밥 신세가 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학 입시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대학입시에서 내신을 40% 반영한다고는 하지만 실질반영율은 너무도 미미하다. 더구나 사회탐구나 과학탐구 과목조차도 입시의 당락에 거의 영향이 없으니, 나머지 기타 과목은 거의 고사 상태다.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다 봐도 수학보다는 지리가, 역사가 더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영어에 온통 시간을 소비하였건만 외국인을 만나면 주눅이 들어 한마디도 못한다. 수학은 어떻게 생겼는지 이제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시대에 맞게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기본 과목에 대한 능력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시대를 유연하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문예체의 능력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국어 소양, 수학적 사고와 문제해결력, 더욱이 글로벌 시대에서 영어 실력 향상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기본 과목에 문예체의 소양과 능력까지 갖춘다면 이보다 더한 교육에서의 메디치 효과가 있을까?

우리는 공부하는 과목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제2외국어도 기술도 정보컴퓨터도 한문도 역사까지도 선택과목이 되었다. 과목의 수를 줄여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메디치효과를 최고조로 더할 수 있는 교육과정 운영과 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를 외우는 치과의사, 그림을 그리는 수학교사, 노래하는 과학자, 강한 신체를 가진 작가 등,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그들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이제는 곧기만 하고, 강하기만 하고, 실용성만 따지는 인간 생산에만 너무 힘을 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력도 능력도 중요하지만 아름답고 여유 있는 그래서 서로에게 베푸는 삶이 있고 평화가 있는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분위기 있는 인간을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한 시대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니 서울시교육청도 중학생들의 전국학력연합평가 시험을 거부하고 문예체 교육만을 부르짖는다면 또 하나의 편견이 낳은 불행한 과거의 교육의 한 장면이자 메디치효과를 반감시키는 모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2010.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