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책무성이 그리운 시간
유연한 책무성이 그리운 시간
오늘날 우리 교육은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철학과 정책이 다르기는 하지만 진보나 보수 진영 모두에서 변화와 개혁에 제동을 걸 사람은 없다. 21세기, 미래의 세계는 상상을 초월한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고, 그동안 학교교육에서 가장 중시해 온 기술이나 지식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1년도 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언제나 영원할 것 같았던 대기업의 명성도 이젠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몸부림쳐야 하는 현재의 세계 동향을 살펴보는 가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러한 미래 혁신의 시대적 분위기가 교육의 방향타 노릇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수렴적 사고를 중시하는 정답 있는 교육보다는 정답이 없는 교육, 창의성을 길러 주는 교육에 사활을 걸어야 하고, 가지고 배운 자들의 잔치에 불과한 모순된 사회 구조를 바꾸어 모두가 함께 행복한 학교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요즘 우리 교육은 핀란드의 교육시스템과의 많은 비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개인의 나이나 거주지, 경제 여건 등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핀란드 교육의 핵심이라고 한다. 학생들의 능력이나 수준에 따른 학급 편성이 없고, 일제고사와 같은 평가와 경쟁 중심의 교육이 없다. 평가보다는 배움과 돌봄을 우선시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핀란드 국가교육청장을 지낸 ‘에르끼 아호’는 ‘우리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어느 한 아이들의 재능도 버릴 여유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찍부터 학생들을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으로 구분하는 구조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풍토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연한 책무성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유연한 책무성은 학교의 교원들에게 교육의 성과나 책임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어 진정한 배움과 배려에 중점을 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책무성에만 포인트를 둔다면 누가 자발적으로 학교교육을 혁신적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혁신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처벌 받고, 대강 철저히 규정이나 지침에만 의존하면 상을 받는 사회라면 누구도 앞서 어떤 일을 벌여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 교육은 이것을 간과하고 있는 듯싶다. 교과부는 교과부대로 21세기에 맞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역량있는 인재를 요구하고, 진보교육감들은 평등과 인권에 더 무게를 두면서 각의 대림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유연한 책무성을 발휘하지 않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요즘 학교 출근하기가 겁난다는 교원들이 많다. 특히 교장이나 교감의 경우에는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과거에는 별로 문제시 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가혹할 정도로 책무성에 대한 부담을 안아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물론 과거의 잘못된 관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혁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다만 사소한 일까지 책무성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되지 않기 때문에 앞서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학교 현장의 변화는 교장을 포함한 교원의 이해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학교 현장의 변화와 개혁의 주체는 교원이다. 교과부나 교육청은 변화와 개혁 정책의 당위성에 대한 홍보와 그에 못 미치는 교원에 대한 질책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해 오도록 유도하는 일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현재의 모든 교원들이 개혁의 대상이라고만 하고 신뢰해 주지 않는다면 혁신이든 개혁이든 교육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들을 모두 갈아치울 수는 없지 않은가?
교육의 주체들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에게 신뢰와 기대의 손짓을 보내야 한다. 함께 교육 혁신을 위해 나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고,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자신에 대하여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교육의 혁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핀란드의 교육도 단기적으로 바꾸어 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편적인 개혁을 통하여 즉각적인 결과만을 보려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미래 비전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교육시스템을 바로 잡아 나가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하게 학교 현장이 변하고 있다. 노선이나 이념은 달라도 교과부나 교육청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생각들을 교육정책으로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일 것이기도 하고, 그동안 무능한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일신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더 빨라지고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 결과일 것이다.
이제는 좀 차분해 질 때다. 지금 밀어붙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조급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제는 그동안 불도저로 빠르고 강하게 닦아 온 길을 보수해야 할 시점이라 본다. 보수도 정리도 하지 않고 계속하여 빨리 긴 길만 내는데 치중한다고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닦아온 그 길에 무서운 산사태보다 더 큰 붕괴가 기다리고 있음을 교육수장들은 이해해 할 시간에 와 있다고 하겠다. (201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