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가족이야기

아버지추도문

청오 2008. 6. 23. 14:26
  

아버지 내 사랑하는 아버지


유세차 정해년 삼월 스무 닷새날, 오늘 저녁 아버님의 영전에 당신이 평생 애지중지 키워놓으신 가족들이 모두 모여 삼가 이생에서의 이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님의 존체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49일이나 흘렀건만, 우리들은 아버지의 뜨거웠던 온기가 생생하여 아버지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가셨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거실소파에 비스듬히 앉아계시던 모습이, 작은방에서, 병실에서 누워계시던 모습이 우리들의 눈에 선하고, 불의에 말문을 닫고 쓰러진 이후 가끔씩이나마 의식이 돌아와 우리들을 알아보는 듯한 어린애 같은 순박한 표정을 짓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신나했는지, 그런 기억들이 아직도,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아버지, 그러나 아무리 아니라고 몸부림치고 손사래를 쳐도 당신은 이제 우리 곁에 없습니다. 퇴근길, 버릇처럼 향하던 병실에도 당신은 더 이상 없습니다. 주말에도 이제 갈 곳이 없습니다.

아버지, 언젠가는 떠날 줄을 알면서도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방심과 착각에, 당신이 살아계신 동안 당신 곁에 자주 머물면서 더 많이 마음을 쓰지 못한 지난날을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앞을 가려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늘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당신의 아픔을 더 자주 더 오랫동안 지켜주지 못한 불효를 어떻게 씻을 수가 있을까요? 그까짓 일이 무엇인지,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비하면 너무도 하찮은 일상에 얽매여 그렇게 당신의 아픔을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하고 결국 아버님을 멀고 먼 저 세상으로 보내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아버님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앞에 서니 또 한번 하늘이 무너지는 통한의 슬픔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살아생전 드시지도 못했던 술 한 잔 드리면서 당신의 영전에 이렇게 앉아 울고 있다고 해서 그동안 당신이 우리들을 위해 감내하신 그 큰 고통과 외로움을 어떻게 위로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그렇게 아쉬움만 남기고 가실 것을, 그렇게 허무하게 가실 것을, 왜 진작 자식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로 당신의 가슴에 가득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당부하고 웃고 회고하고 그렇게 하시지 그랬나요?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신 그 많고 많은 이야기들을 한 줄 글로도 말로도 남기시지 못하고 영원히 사실 것처럼 살다가 문득 말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얼마나 많았을 텐데 왜 그렇게 한마디작별의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시고 말았단 말입니까? 참으로 원망스럽고 원통하기 그지없습니다.

병원을 드나들면서 한 번쯤은 깨어나 그동안 살아오신 숫한 이야기들을, 자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보따리를 풀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정신이 조금씩 맑아오는 때는 정말 저희들은 어쩔 줄 모르는 이이들처럼 신나고 기뻤는데, 결국은 그렇게 가시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긴 인생을 지금껏 살아오셨습니다. 이제야 그 춥고, 그 어둡고, 그 지겨웠던 긴 삶의 터널을 지나 따뜻한 봄도 꿈도 희망도 있는 아름다운 세상에 나온 것을. 그 축복과 환희의 세상에서 마음껏 즐기고 신나게 노래 한번 못하고서 당신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 젊은시절 구사일생으로 살아오신 그 패기와 저력으로 좀더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을 해 보시지 그랬나요?

젊은시절 할머니에게 부렸던 당신의 그 황소 같은 고집에 교통사고도 피해가고, 청년의 혈기왕성한 패기에 쏟아지는 육이오 전쟁의 탄환도 피해가서 당신은 그렇게 처절한 죽음의 구렁텅이에서도 살아남지 않았습니까?

아버지의 그 우직함과 일관된 삶의 철학을 어머니와 우리들은 당신의 필요 없는 고집이라며 자주 불만을 내놓았지만, 당신의 그 고집과 혈기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있기나 했을까요? 당신이 중심을 잡고 우리 가족을 보살피고 우리 가문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우리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일찍이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할아버지를 잃고, 쌀 한 톨 없는 집안에 가득한 것은 할머니와 어머니와 어린 동생과 자식들, 도무지 해쳐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참담한 현실 앞에서도 당신은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버지는 세상은 누구보다고 강하고 누구보다도 자식을 위해 인생을 다 걸고 사신 대단하고 거룩하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분입니다.

할머니와 세 여동생, 줄줄이 태어나는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면서 당신은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월급봉투를 받아도 도회지로 하숙비 보내고 나면 남는 것이라곤 동전 몇 푼만이 봉투 속에서 달랑거리고, 평생 제대로 된 양복 한 벌 입어보지 못하고 사셨지요. 헤어지고 오래된 양복을 입고서도 당신은 제자들과 동료들 앞에서 참으로 당당하지 않았습니까?

당신께서는 그런 역경 속에서도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고,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애 쓰셨지요. 그런데도 우리들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줄줄이 졸업하면 학원에서 재수 생활을 하면서 더욱 당신을 힘들게 하곤 했지요.

이제 돌아보니 정말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따라주지 못했던 지난날에의 후회가 막급하고, 다시는 당당한 자식으로 거듭 태어나 아버지를 기쁘게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고 한스러울 뿐입니다.

우리들은 어느 날 당신의 편지를 받고 많이 울었지요. 그 편지 속에는 머리 깎고 중이 되어 절로 들어가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 가득해 있었지요.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는지 이제야 당신의 그 때의 아픔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세 여동생을 출가시키고 여섯 남매를 남 뒤지지 않게 키워오셨습니다.

아버지, 참으로 당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위대하고 큰 남편, 오빠, 아버지였습니다. 당신의 인내와 일관된 삶의 철학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오늘의 우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지고지난한 어려움만 없었다면 당신은 더 빨리 교감 되고 교장도 되어 즐겁고 안락한 삶을 누리셨을 것입니다.

아버지 오늘 우리들은 당신을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면서 그동안 아버지의 바다보다 더 넓고 깊은 자애로움을 영원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항상 가슴에 새기면서 자라나는 당신의 손자들에게 내리사랑을 베풀어 당신이 우리들에게 다한 사랑을 베풀어 당신의 욕심과 공을 헛되지 않게 하도록 열심히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당신의 혼백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하늘나라에 머물면서 우리들을 지켜주세요. 오늘 우리들이 아무리 슬퍼해도 당신의 그 큰 은혜를 다할 길이 있겠습니까만, 이제 홀로 남은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고 형제들끼리도 우애롭고 화기애애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은 우리들 걱정에, 차마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는 심정으로 이 세상을 떠나기 어려우시겠지만, 저희들을 믿고 그동안의 긴 병마와의 처절한 고투의 상처와 차가움을 버리고 편안하게 웃으면서 모든 것을 털고 훌훌 웃으면서 떠나십시오.

다시 한번 아버지 당신의 영전에 절하며 작별하려 합니다. 아버지, 이제 저세상에서는 병들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삶며, 복락과 안락한 삶을 곁에 두고 영겁토록 누리시기를 여기 우리 가족들 모두 부처님의 가호를 더불어 빌며 기도하겠나이다. 아버지 오늘 차린 음식 많이많이 드시고 극락왕생하십시오. 아버지, 아버지, 아 사랑하는 나의 거룩한 아버지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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