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나의이야기

나도 누웠거니 너도 누웠느냐

청오 2008. 10. 16. 17:56

 

나도 누웠거니 너도 누웠느냐


 

내가 찬 기운이 스멀거리는 지하에서 머리위에 찬바람을 맞고서

여기에 누운 지도 참 오래되었구나.


한 때는 지나가는 나무꾼이 내 허리 곁에 무거운 지게를 내려놓고

시커먼 구공탄 같은 콧물 찔찔 흘리는 아이들이 도시락밥을 먹으면서


나를 알아보고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고 문안 인사도 나누고 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내가 누워 있음을 알지 못하는구나.

내 손으로 내 얼굴을 단장할 수 없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네.


너희들이 인생이 짧네, 이것저것 가진 게 없어 정말 살맛 안 나네 하면서

내가 여기 누웠는데, 너도 그 잘난 텔레비 앞에 누웠으니


그래 맞다. 인생은 참 짧다. 너도 벌써 오십 줄에 앉았으니.

즐기는 법을 오르니 어찌 즐거울 수 있고, 베푸는 법을 모르니 어찌 베풀 수 있겠나.

죽는 법도 모르니 언제 죽을 줄 모르면서, 사는 법도 모르니 어찌 살았다 하겠느냐.


너도 머지않아, 아 참 짧았네, 내 인생이, 그렇게 통탄하면서

내 곁에 영원히 누우려고 오는 날이 쉬지 않고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텔레비 앞에 누워서 뼈마디 갉아먹는 전자파 쏘이면서 졸고 있나니

차라리 찬바람 쏘이면서 수년 세월 세수도 못하고 있는 나 좀 일으켜 줘


너는 하루에도 세 번씩이나 얼굴 닦고 이빨 닦고 머릴 만지고

그것도 모자라 홀딱 벗고 거울보고 희죽거리면서 뜨뜻한 물을 뒤집어쓰지만


나는 몇 년이나 얼굴도 못 만지고 잡초더미에 누워있지 않느냐?

내 얼굴도 좀 다듬어 다오, 나도 깔끔한 얼굴로 한가위를 맞아 마실이라도 가고 싶다.


자식 학원비로 월급 탕진하고 기름값이 없어서 못 오느냐?

학원비에 몽땅 떨어 넣어도 너 자식은 너 것이 아니란다.


너가 나를 참 오랫동안 머리도 깎아주지 않는 채 버려 둔 것 이상으로

너 자식도 너를 그렇게 내버려 둘 것이다. 아니 너는 흔적도 없어질 것이다.


내 이웃에 누워있는 사람들도 사실은 내 얼굴과 크게 다를 바 없구나.

너가 사는 동네의 이웃들도 너와 별로 다를 것 없나니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머리 묻고 방구석에 쪼그라져 있지 마라.

기름값 쓰면 기름값 생기고,


시원한 공기 마시고 야트막한 산에 올라 낫질이라도 하면

내 곁으로 빨리 오는 그런 일은 없어질 것이다.


제발 올해는 나도 머리 깎고 이웃에 마실가서, 어여쁜 처자 있나 한번 둘러보고 싶다.

나는 기다린다. 죽어 누우러 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내 곁에 오는 너를.

(200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