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대의 추억과 훈련병의 아버지
논산 연무대. 좋은 기억은 없다. 어둡고 고된 기억이 남아 있을 뿐.
80년대 초, 이리저리 장발 단속 피하면서 고이 길러둔 머리털 까까중 수준으로 몽땅 털고 부산진역 앞에서 집결하여 훈련병 수송 열차에 올라, 초조한 눈빛으로 창문 밖을 내다보니 절규에 가깝게 울고 있는 어머니, 훗날 기약도 없었지만 손수건 적시는 그 여자, 곧 자기들의 현실이라고 우울해하는 친구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기차에서부터 바짝 군기를 죄는 하사관, 울음과 눈물을 옆에 두고 떠나는 그 열차는 왜 그리 천천히 플랫폼을 떠나던지. 참으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것이 그대로 현실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이 흘렀고 기차가 연무대역에 도착하니, 건너편 레일 위에 길게 늘어선 다른 기차, 신병 훈련을 마치고 송충이 한 마리 떡 달고 폼 나게 자대로 배치되는 선배 훈련병을 보면서, 아! 나도 저런 군인이 될 수 있을까 참 부러워했는데.
부러움도 잠시, 연무대역에서 훈련소 연병장까지 이동하면서도 어설픈 군기에 주눅이 들어 주변도 돌아볼 수 없었던 그 시절 연무대 입소 기억. 엄동설한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고 5주 후에는 나도 폼 나는 이등병을 계급장을 달고 갓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짜식들! 고생 한 번 해 봐.
참 달라졌네. 논산 연무대 풍경은 유원지 풍경이었지. 주변에는 갈빗집으로 좍 깔리고, 여기저기서 굽고 타는 고기 냄새, 이 집이 좋을까, 저 집이 좋을까 쳐다보면서 별로 불안감이라고는 없는 내 아들을 데리고 나는 한우갈비를 먹었는데,
9월 1일 그날, 그놈의 비는 어찌나 그렇게 퍼 붓던지. 여유 있게 출발하여 갔는데, 비는 한없이 내리고, 고속도로는 사고로 주차장. 짧은 시간에 점심을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여유 좀 부리고 연무대 연병장에 아들 손을 잡고 들어갔더니, 이건 축제 분위기.
공연하고 연주하고….
그러나 서서히 분위기는 반전되고 집합을 알리는 방송에 그제야 일말의 불안을 느낀 아들은 나와의 포옹도 제대로 주고받지 못한 허접한 마음으로 까까머리 청년들이 모인 연병장으로 뛰어 깠는데.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비감해 오고. 그래도 군대는 군대, 아들의 좀 당황하는 눈빛을 떠올리면서 장정들 틈으로 사라진 아들을 찾아보려고 온갖 시력을 다 동원해 보지만 역부족.
식을 마치고 연병장에서 사열을 하는데, 나는 주홍빛 감도는 티셔츠를 입은 아들을 좀 쉽게 찾아내고 손을 죽으랴 흔들었지만, 아들은 나의 위치를 찾지 못한 듯 계속 두리번거리면서 지나가고, 막사 저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꽁무니를 바라보고 생각 없이 서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마음은, 누구의 부모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예외는 아니었네.
아들을 두고 서울로 혼자 돌아오는 마음은 참 고적했는데, 비는 그때까지도 그치고 않고 종일 거리를 적시고…. (2008. 9.1일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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