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나의이야기

버려야 할 것, 챙겨야 할 것

청오 2010. 10. 29. 10:26

 

버려야 할 것, 챙겨야 할 것


  온갖 만물의 수호신 햇볕의 온기가 식고 날빛 짧아짐에, 성장의 두툼한 옷을 벗고 다홍빛 휘장으로 갈아입었던 뭇 나뭇가지들도 늦가을 소슬바람을 이기지 못해 그 화려한 치장을 버리고 만다. 그런 과정과 나뭇가지의 종말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허탈하고 처연(悽然)한 심정을 달래지 못하여 가끔씩은 안절부절못하지만, 머지않아 상실의 아픔을 잘 견디어 낸다. 그 이유는 새로운 백색의 천의(天衣)가 다홍빛 휘장을 대신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처음으로 찾아오는 첫손님에 기대는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러나 첫 손님은 기대하는 만큼의 그렇게 풍성한 모습으로 다가서 주지 않는다. 깊이 잠든 한밤중에 홀연히 왔다 가기도 하고, 창을 열지 않고 묵상에 잠겼던 그 짧은 시간에도 왔다가 가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아쉬움은 잠시 뿐이다. 백의의 천사를 언제 그렇게 애타게 기대하였냐는 표정으로 긴긴 겨울 동안 우리는 잘 살아간다. 참으로 삼라만상에 살아서 움직이는 것들에서 가장 비정한 것이 인간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열망을 순식간에 잊고 별로 연연해하지도 않은 모습, 이런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인지상정과는 거리가 멀게 별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자기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과 집착은 누구랄 덧도 없이 한결같다. 돈 좋아하고, 예쁜 여자 멋진 남자 좋아하고, 권력과 명예도 있으면 금상첨화고, 뭐 다 그렇고 그런 것이지만…. 떨어지는 낙엽 한 장에도 눈물 흘리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듯이 솜털 같은 눈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에도 가슴앓이 하면서 그 자이에 드러눕고 마는 사람들도 많다. 참으로 엄청난 변화 속의 시대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면, 그들은 정신 나간 19세기 사람쯤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애착과 집착은 다른 것일까?

  애착과 집착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고, 취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분, 누구에게나 항상 붙어다니는 존재다. 탐욕(貪慾)도 집착이요, 금욕(禁慾)도 집착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욕(無慾)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식물같은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인데, 답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하면서 무욗의 경지에 도달함이 어렵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했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운명처럼 목숨을 버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예수보다는 석가가 한 수 위가 아닌가 하는 허튼 생각도 해 본다.

  집착의 대상이나 정도는 사람들마다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인다. 눈이 오면 꼬맹이나 강아지만 고샅길을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홀연히 늙어 버린 잔주름 많은 중년의 낯빛에도 싱그러운 웃음이 떠돈다. 마을회관에도 노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그런가 하면 깊은 미궁 속에 빠진 사람처럼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자기세계에 집착하면서 밖으로 얼굴조차 내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첫눈이 오면 대부분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창 열애 중인 사람은 먼저 자신의 연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단축번호를 눌러 댈 것이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은 서로 연인이라도 할 수 없고, 이미 몇 달 전 언약해둔 둘만의 장소로 부리나케 달려가야 참 연인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언약한 사람도 없고 엄지를 부지런히 사용할 형편도 못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에 젖어 있게 될까?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기억해 내고 싶은 나름의 과거는 있을 것이다. 이 순간에서는 이미 기억의 저편에서 희미하게 자리잡았거나, 아예 망각의 늪속에 빠져버린 과거일 뿐일지라도, 한 대의 다정했던 모습을 더듬어 볼 것이다. 구체적이고 선명이 영상이 다가서지는 않지만 자꾸만 사라지려는 이미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숨소리를 죽이고 남들은 알아채지 못할 만큼 발버둥을 치기도 할 것이다.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인 것처럼 과거는 항상 아름다운 것이다. 현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 시절에 대하여 좀은 관대하고, 지금의 처지가 더욱 초라하면 그리움과 아쉬움은 더 크게 다가오고, 격해지면 심한 후회감에 가슴을 쥐어뜯기도 할 것이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냘픈 눈송이 몇 점, 흩어지는 단품잎에도 혼란과 처연(悽然)한 두근거림이 가슴과 머릿속을 체우거나, 반대로 흥분과 동경(憧憬), 설렘에 빠져드는 등, 참 알 수 없는 삶의 소용돌이에 바져들고 만다. 그런데 그러한 분별도 짧은 시간 내에 잊혀져버린다. 언제 처연한 심정이었는지, 언제 흥분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던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참 좋은 선물인 것이다. 그런 선물이 없었으면 이 복잡한 세상을 어떻게 의연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잡다한 것을 버리는데 인색하거나 너무 쉽게 얻거나 버리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빨리 끓는 물이 더 빨리 식는 법이라고 하더니, 너무 쉽게 얻었기에 쉽게 버리는 것인가. 아무 생각없이 시시때때로 수없이 버리면서도 또 수없이 새롭게 얻는다. 물건을 대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그렇다. 


  게으름의 탓도 있겠으나, 집착 때문에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종이 한 장도 버리지 못하고, 사용하지도 않은 갖은 소품들이 서랍 속에 가득 잠자고 있어도 물건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을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고 별 생각없이 쉽게 책상을 정리하고 서랍속의 물건들을 모두 버린다. 그런 후에는 어느 일정한 기간 동안 담백함과 여유로움을 느끼면서 자신의 선택이 참으로 옳았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을 영위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멀지 않은 세월이 지나면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면서 다시 찾을 수 없는 아쉬움으로 후회하게 된다.

  사람들은 어느 날 주변의 번잡함을 느끼고 여러 주변을 정리하다가 문득 빛바랜 수첩과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요즘 젊음이들에게는 일기장보다는 컴퓨터의 파일을 정리하는 일이 더 많겠지만-지금은 아스라이 잊혀져버린 그리운 얼굴들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오랜 시간동안 한결같은 친구로, 선후배로, 연인으로 남아있던 그리운 그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지금 이렇게 잊혀져버린 사람이 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움 속에도 넣어보고 아쉬움 속에도 넣어보지만 역시 현재 속에는 넣고 싶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리고 지나온 많은 세월 동안 그러한 사람이 자신의 곁에 없었는데도 살아가는데 별로 불편하지 않았음을 느낀다.

  현재에서 우리 주변을 둘러싼 많은 지인들도 또 일정한 세월이 지나면 과거의 그런 사람들처럼 때가 촘촘히 낀 일기책이나 빛바랜 사진첩에서, 컴퓨터 파일의 어느 구석에 잠자는 사람으로 저장될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그 어느 첫눈이 오는 날 그들은 아쉬움으로 회상되는 사람으로만 남아도 그것은 엄청난 인연이 되는 셈이지만, 첫눈이 와도 선홍빛 단풍잎이 소나기처럼 쏟아져도 회상깜도 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저장되어 있는 존재가 되기 일쑤다. 


  사람의 본성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고 과거에도 그랬을 것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너무 현재적인 가치에 몰입되어 살아가는 것 같다. 현재도 결국은 또 다른 과거의 모습일 뿐인데도 그런 현재에 집착하여 인정과 의리를 끊고 이익과 달콤한 맛에 취하여 그 본질을 볼 수 없는 장벽 속으로 스스로 갇혀버리고 만다. 그런 모습이 자라는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세습된 것인지, 요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아쉬운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현실적 이익과 소아적이고 이기적인 집착에는 남녀노소의 차이가 별로 없는 듯 보인다.

  애주가는 심기를 마비시키는 술을 잠재우지 못하고, 애연가는 혹독한 더위에도 600도가 넘는 담뱃불을 입술에서 떼어버리지 못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참으로 마음의 다짐을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집착 중의 집착이라고 할 것들이다. 그러니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에 눈감고 명예나 재물의 집착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것들의 노예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최고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교정에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에 다름이 아니다. 별로 의미 없는 일에 목숨보다 더 우선 가치를 두는 아이들을 보면 참 입맛이 쓰다. 기성세대가 보아서는 아무리 후한 점수를 주어도 개성이라고는 근처도 못 닿아 보일 듯한 허접하게 긴 두발, 허리 속살이 드러나야 멋이고 무릎 위 허벅지의 노출이 그들의 상징이 되는 듯 당당한 모습. 좀 세월이 지나서 뒤돌아보면서 모두가 부질없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으련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최고의 가치요 선이라 여기는데 대하여는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어디 그것이 우리 이이들의 문제일 뿐일까. 남녀노소 그 탐하고 즐기는 것이 대상이 다를 뿐이지 욕망과 집착의 대상과 정도가 다르겠는가.


   일주일에 한번쯤은 친구를 만나 실컷 놀기도 해야 하고, 잠도 푹 자야하고, 영화도 보아도 하고, 텔레비전에 눈을 붙이기도 해야 하고,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 전자파도 흠씬 쐬야 하고, 눈여겨 봐 논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한번 발동시켜 보아야 하고, 그런 다음 공부도 해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고, 학원도 가야하고…. 참 할 일 많은 녀석들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해야 하고, 보아야 하고 생각하여야 하고 먹어야 한다. 아니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돌아다보면 이 많은 것에 대한 집착이 육신의 병마(病魔)로 변하여 돌아오고 스트레스로 쌓여가고 결국 육신을 앗아가는 저승의 사자로 돌아온다.

  많은 것들에 대한 집착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무욕(無慾)과 자연합일(自然合一)의 초월적인 삶을 살아가는 기인(奇人)들을 우리는 간혹 독특한 인생극장의 영상으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기인들을 잘 살펴보면 공통적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초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같지만 그들의 집착은 범부(凡夫)인 우리들 보다 강하다. 세상의 잡다한 꺼리에 대한 집착은 버렸지만 분명한 하나의 지향적 가치는 버리지 않고 의연하게 집착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우리 보통사람들은 기인(奇人)들에 비하여 너무 많은 것에 집착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자신의 본질적인 가차를 형성하는 핵심을 간과(看過)하고 산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성자에게는 성자 본연의 모습이, 학생들에게는 학생 본연의 모습이, 교사들에게는 교사, 의사에게는 의사가 고집스럽게 집착해야 할 본연의 경지가 있다. 그리고 그런 본연에 대한 강한 집착이 참으로 필요한 세상이라고 말하고도 싶다. 농부가 은둔자처럼, 의사가 시인처럼, 교사가 장사꾼처럼 살아가는 목표를 정작 자신의 본연으로 여기고 이에 집착하면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괜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생각일까?

  모든 타인들이 정말 아니라고 시비(是非)하여도 대다수 사람들은 허접한 속물(俗物)을 버리지 못하고,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본질이 아닌 것을 본질이라고 맹신하며, 그것을 추종(追從)하는 것은 역리(易理)가 정말 순리(順理)라고 아무 거리낌 없이 믿고 행동한다. 믿지 않고 있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외형적인 행동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한 부류에서 우리 모두 예외가 못된다.


  요즘 아이들은 활기차고 개성적이고 자유분방한 힘이 있는 행복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은 그들을 보면서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다. 물론 기성세대도 자신의 집착의 맹신의 허울을 쉽게 벗어 던지지 못하는 동류(同類)의 사람이라는 이름으로는 같지만 그 시대를 먼저 삶아 간 선행자로서의 아쉬움일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참 본질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한데도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그냥 대충 하루하루를 무위한 모습으로 자신의 입맛만을 탐닉하며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할 때가 많다. 버리면 또 얻을 것이기에 버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땀을 흘려야 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깊은 장롱 속에 묻어 버린 녀석들 같아서 더욱 안쓰럽다.

  과거에 우리들이 살면서 정말 소중하게 여겼던 친구들, 연인들, 멋스런 소장품들, 명품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아무 의미 없이 잊혀지고, 혹 행운을 누린다고 해도 첫눈 내리는 날 회상 속에 한 희미한 영상으로 남을 뿐이다. 대신 새로운 물건이나 새로운 사람들이 우리들 자신을 채워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버려지거나 억지도 버려도 결국은 언제 필요한 존재였는지 의미도 주지 못하지만 현재는 아무 탈 없이 존재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별 볼일 없이 유혹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집착을 좀 거두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직 미완의 꿈을 만들어 가는 학생들은 더욱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세상이 너무 빠르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학 입시의 강을 건너도 공부에 지쳐야 하고, 취직하기 위해 몸이 달아야 한다. 그러한 전쟁터에서도 I․T시대의 온갖 유혹에 몸이 이끌리고, 세상의 높은 파고와 싸워야 하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잃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잃는 자가 어찌 이런 세상에서 의연하게 버틸 수 있으랴.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버릴 것은 버리되, 그 본질에 충실하려는 삶의 태도가 더욱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된다.

(2010.1. 동작고등학교 교지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