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 9패의 철학
도전에는 늘 실패와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요즘 잘 나가는 ‘혼창통(魂創通)’이란 책에서는 실패를 통해 성공을 이룬 대표적인 인물로 일본 의류품 전문점인 유니클로(UNIQLO)의 모회사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을 예를 들고 있다. 그는 1승 9패의 철학을 가지고 있고 같은 제목의 책도 출간하였다. 그는 ‘대부분 장사하는 사람은 이기는 순간은 알아도, 지는 순간을 잘 모릅니다. 새로운 것을 안 하기 때문이지요. 진짜 장사에서 성공하려면 10번 중에 1번만 승리해도 됩니다. 뒤집어 말해, 9번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라는 얘기지요’. 그러나 그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실패로까지 가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치명적인 실패의 정도를 수량적으로 명확히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물적인 감각으로 어느 정도가 치명적인 결과인가는 대략 인지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소한 실패를 치명적인 실패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도전해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패란 물질적으로 계량화 된 결과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수용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서.
젊은이들이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말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버리기도 하고, 7번 실패에 대한 충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미리 단정해 버린다. 또한 실패를 도전으로 상승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내부의 적을 밖으로 내몰지 못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초기 투자자본이 반 토막이 되었어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절망하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잘 분석해 낸다면 곧 실패를 만회할 날이 오지 않을까.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는데, 원균은 일본군에 대항했으나, 대패하고 전사해 수군은 전멸상태에 빠졌다. 사태가 긴급해지자 정부는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임명해 적을 막도록 했는데, 이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군사 120명과 병선 12척뿐이었다. 이순신은 조류를 이용해 공격함으로써 일본 병선 31척을 격파했고, 일본 수군은 달아나버렸다. 이 명량해전은 12척의 배로 10배 이상의 적을 크게 이긴 싸움으로 정유재란의 대세를 바꾸고, 이후 일본수군이 서해로의 진출을 포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이순신의 도전정신이 교훈으로 살아있지 않은가?
현대인의 참으로 나약한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연예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잇단 자살이 모방 자살, 일명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키면서 자살률을 급증시켰다. 또한 어려운 살림살이에 대하여 비관한 경제 비관형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고도 한다. 국가는 자살 문제를 개인의 국한된 문제로 방치해서는 안 되고 사회적 차원의 해결과제로 인식하여야 한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정책의 수립을 서둘러야 하며, 청소년들의 생명존중의식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패기도 의지도 부족하며 실패에 대하여 너무 민감하다. 그래서 한번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여 일어서고자 하는 집념을 버리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옛 어른들의 칠전팔기 정신을 가슴에 담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수없이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정신이 오늘날의 우리나라를 지탱하게 된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도 그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우리 부모의 세대는 모두가 가난하였고 수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을 맛본 세대다. 그럼에도 결국 오늘 같은 산업사회의 기적을 이루어 우리에게 여유와 풍요라는 선물을 안겨 주셨다. 자신들은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떠났지만 말이다. 이러한 부모님 세대의 희생 때문에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들의 희생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성장하여 왔기에,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그분들의 인내심을 알게 모르게 체득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의 자식 세대다. 우리 세대가 풍요롭게 사는 모습만을 보아 온 그들이기에, 7전 8기의 도전정신을 배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희생과 패배와 인내의 철학을 어떤 형식으로든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세대는 그저 자기 자식 외에는 관심이 없다. 형편이 안 되면 몸을 팔고 도둑질을 해서라도 자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하여 온 몸을 불태운다. 세계 최고로서 기네스북에 등재될 부모의 내리사랑이라고 칭찬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식들에게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투자해도 부모들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고, 노년에는 참으로 허망하고 고독해 진다는 것을 알 터이지만,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마다하는 일이 없다. 요즘은 고위층에 대한 뇌물이 돈다발이 아니라 자식 취직에까지 이르렀다니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자식들의 관심과 능력은 아예 뒷전이고 이름 있는 대학에, 그저 돈 되고 안정된 직장을 얻어 주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짝 버리듯이 해 온 것이 어제 오늘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유망한 미래가 자식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 병역 문제 등으로 비참하게 짓밟히는 불행한 이야기를 최근에 더욱 자주 듣는다.
우리의 속담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라고 말한다. 주로 이성간의 교제에서 쓰이는 말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 열 번이라도 구애한다면 결국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열 번 찍기를 각오하는 사람도 없고, 열 번 찍어 어렵게 이루어 놓고서도 쉽게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인의 진정성의 상실의 결과라고 해야 옳을 것인지.
진정성의 상실! 이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하고 싶다. 과거의 내리사랑은 가식도 무엇을 바라는 의도성도 없는 진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리사랑마저도 믿을 수가 없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거래를 해야 하는 사회다. 자식이라도 달콤한 유혹이 없으면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냥 무상으로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
중간고사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는 MP3를 걸어야 하고, 대학 합격증과 자동차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자식이 웬수다’라고 했던 옛 말은 지금을 위하여 미리 만들어 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최신형 휴대폰을, 자동차를 선물로 걸어 분발할 동인을 제공한다면 안하는 것보다 틀림없이 결과가 더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결국 언젠가에는 부모들의 목숨을 담보로 요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 것인가. 가끔씩이지만 별 시시한 돈 문제로 부모와 자식 간에 일어나는 칼부림을 맛보기로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이는 모두 우리의 책임이다. 자식은 전유물도 아니라서 내 마음대로 길들이고 내 맘대로 키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식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자식의 관심도 소질도 뜯어보아야 한다. 공부만 잘 한다고 자식의 도리를 다 했다거나, 국가의 미래가 밝다고 자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예를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이 감동적으로 봐 오지 않았던가. 특히 정의가 아니고 남의 처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내 자식, 내 자식에만 연연한다면 이는 내 자식을 멍들게 하고 내 나라를 망치게 하는 시작이 될 것임은 기우가 아니다. (20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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