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복 서울고교장선생님 명예퇴임송공]
뿌리 깊은 나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몇 명쯤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생 어떤 사람을 사랑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기는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위장된 진실 앞에서 허물어지고, 이익과 명예 앞에서 비굴해지며, 안일과 나약함 앞에서 몸을 숨겨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 보는 눈도 부족하고, 사람들 눈에 드는 사람도 못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이, 아난다에게는 석가, 베드로에게는 예수 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이경복 교장님선생님을 만나 그분의 인간됨을 아는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시대 같습니다. 방금 확인하고 돌아서면 또 바뀌는 세상, 잠시라도 치열한 생존의 광장에 서 있지 않으면 세상에 묻혀버리는 숨 가픈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과 제도의 변화만큼 빠르게 세상의 인심도 바뀌는 듯합니다. 진리도 항존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세상의 인심이 조변석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교육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제도를 제때 받아들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불만이기도 하지만, 교육자의 소신과 열정이 죽은 시대라고 절망하고 사교육에 휘둘리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흐름을 읽으면서 변해야 할 것,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지을 줄 알고, 식지 않은 교육적 신념과 열정의 외길을 걸어가는 누군가의 만남이 더욱 절실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987년 9월, 저는 참으로 소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려운 임용고시를 치르고 신출내기 교사로 발령을 받고, 여의도고등학교에 들어섰을 때, 환하게 웃어주는 이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설렘과 가벼운 흥분도 적지 않았지만 두려움이 더욱 많았던 초임 학기 중 발령, 교무기획과 고사계로 뜻하지 않은 행운이 된 이분과의 만남, 벌써 23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 이후 교직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그분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경복 교장선생님, 듬직한 풍모, 자상한 배려, 깊은 교육적 철학과 신념, 공직자로서의 투철한 청렴과 자기 관리, 헌신과 열정, 교사들과의 화목, 무엇보다도 미래교육 희망을 위한 굽힐 줄 모르는 강인한 신념과 노력, 참으로 언어로 수식할 수 없는 그분의 모습은 신출내기 교사로서 늘 흠모와 경애의 대상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은 불기둥이 되어 우리교육의 꿈을 선도해 나가시는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여의도의 밤풍경을 내려다보면서 늦은 밤까지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한 강의, 자율학습 지도, 학교일을 기획하고 실천하면서도, 퇴근을 잊고 깊은 밤까지 저를 포함한 동료교사와 함께 희망 서울교육을 위한 토론과 고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교무기획을 맡고 학년부장을 거치면서 중견의 젊음과 넘치는 열정으로 여의도고를 명문고로 거듭 격상시키고, 이러한 이경복교사의 투지와 열정에 많은 동료들이 매료되어 함께 학교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어 주었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만족감 또한 대단하였습니다. 젊은시절부터 남달랐던 이러한 미래지향적 예견과 혁신의 노력이 오늘날 서울교육을 리드하는 대교육자로 귀결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교단을 곧 떠나야 하시지만, 30년 이상 준비와 실천을 통해 얻은 교육 철학과 경륜을 이대로 사장시키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온갖 도전을 이겨내고 든든한 울이 되듯이, 앞으로도 교육지대의 거목으로 남아서 경륜과 철학이 언제나 후임교사들에게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밤을 잊은 대화, 고민과 성찰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귀감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0.2. 동작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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