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수능 전사들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은 무엇일까? 자기의식은 없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는 일, 직장에 취직하는 일, 결혼하는 일, 마지막으로 자기도 모르게 왔다가 자기도 모르게 가는 죽음 등도 순서를 다틀 정도로 중요한 계기가 되는 일들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이러한 계기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 생각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목을 집중하는 시험이다. 시험을 직접 치르는 입시생들과 그들의 부모뿐만 아니라, 대학입시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시민들도 그날만 되면 긴장하고 관심도 갖게 되는 날이다. 수험생을 시험장까지 무료로 태워다 준다는 택시기사에서부터, 도시락을 제공하는 아주머니, 수험표를 들고 가면 영화도 연극도 할인해 주고 아이스크림도 공짜로 먹을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사람들이 많아 참 세상이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는 하루다.
그만큼 우리 학생들은 대접을 받는 날이다. 12년 동안 정말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받는 보상이니 당연한 일이다. 성적이 어떻게 나오던 간에 대학에 합격하는 문제도 나중에 생각할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고, 일단은 12년의 공부를 결산하는 시험이므로 지금 이 순간에 보상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하는 일이 인생에서 정말 고단한 일일까?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봐서는 정말 고된 것이라고 말하기 참 어렵다. 공부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편했다고 하는 수석합격자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요즘 학생들에게는 공부만 하면 밥도 주고 용돈도 주고 명품 옷도 대령한다. 그 다음을 생각해 보라.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는 일이 더 어렵고, 세상의 반려자를 만나 잘 사는 일은 어디 쉬운가? 그리고 성인이 되어 자신도 부모가 되어 자식을 교육하는 일에 이르게 되면 생의 고단함에 몸서리가 쳐질 수도 있다.
이처럼 공부하는 일이 정말 가장 쉽다는 생각이 드는데, 수험생들이 너무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한 것일까? 이것은 아마도 공부 외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편하고 쉬운 것이 공부라 하더라도 공부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 특히 학교 수업이 재미가 없다. 선생님들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이 머리에 잘 들어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어려워서 알아듣지 못하는 녀석들도 있고, 너무 쉬워서 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녀석들도 있으니, 이래저래 학교 수업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학교 수업을 마치면 또 학원이 기다리고 있으니,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은 애시 당초 불가능하다. 맛있는 음식도 두어 번 먹으면 싫증이 나고, 재밌는 일도 좀 하고나고 지겨워지는 것이 세상 이치인데, 아무리 공부가 좋아도 새벽부터 자정까지 꼬박 학교로 학원으로 뺑뺑이 돌고 나면 온몸이 축 처지고 말 터인 즉, 행복이란 이름하고는 거리가 먼 셈이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수능을 치르고 난 학생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여 이러 저러한 특혜를 베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학창시절을 지켜보면서 참 많이 흥분도 했고 짜증도 냈고 실망도 했다. 수업 시간에는 틈만 나면 졸고 잠자면서 억지 시간을 보내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어도 그 어느 누구하나 책 보는 일이 없다. 점심시간도 아까워 순식간에 도시락 까먹고 공부하러 도서관으로 뛰어가던 그 옛날 모습을 생각하니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잠자는 놈들을 깨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오히려 선생님들이 봉변을 당한다. 눈으로 항거하는 일은 옛날일이고 이제는 욕설로 맞선다. 그러니 그냥 자도록 내버려 두어 봉변을 당하지 않은 일이 순시하는 교장선생님의 눈치를 받는 일보다 더 마음이 놓이는 일로 여기는 듯하다.
수업시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말이 공부지 자습실에서는 항상 이어폰에 음악소리 함께 하고 있으니,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은 어디가고 음악과의 랑데부로 과연 공부에 집중이 될 것인가.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래도 열공하는 학생층에 속한다. 밤늦도록 휴대폰으로 영화 보고 드라마도 보고 오락하면서 문명의 이기를 충분히 즐기다가 하루 일과를 마치는 종아이 울리면 벼락같이 도서관을 빠져 나간다.
우리들의 세대는 지금 세대들보다 공부하는 시간은 좀 적었어도 정말 집중하여 공부하였으므로 그 결과도 좋았다. 밤늦게 도서관을 나서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하수 무리를 보면서 스스로 감동하였고, 가슴이 꽉 찬 듯한 뿌듯함에 하숙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요즘 녀석들 중에서 공부한 난 다음의 뿌듯함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녀석들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옛날이야기는 그 시절에나 맞는 것일 뿐이다. 그 때는 학생들을 유혹하는 것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이웃 학교 여학생이나 남학생에게 곁눈질 하는 정도가 유혹의 전부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그런 것들은 신선한 일들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유혹하는 일이 너무 많다.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수많은 유혹들과 별난 일들이 녀석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상술도 이에 한 몫 한다. 이성 문제는 문제도 아니고, 음주, 흡연, 마약, 성폭행에 오락, 채팅, 쇼핑... 이루 말 할 수 없는 유혹에 견디고 고등학교를 문을 나서는 그들이다. 그런 유혹을 참아 내고 이 시점까지 온 것만으로도 정말 대견하고 큰 다행으로 생각된다.
이제 모레가 수학능력시험일이다. 모든 수험생들은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여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라. 이 험한 시대와 사회를 헤치고 온 너희들은 진정 이 시대의 투사라 할 것이니, 용기를 가지고 주눅 들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까지 해 왔던 그대로 그대들의 청춘을 빛내라.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져 다오. 힘 내라! 수능의 투사들이여.(201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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