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야, 김장하는 그날까지
올 가을은 참 기분 좋은 계절이다. 사계절(四季節)이 뚜렷하다는 한반도에 어느 적부턴가 봄과 가을이 사라졌다고 사람들이 야단이다. 특히 가을은 더욱 짧아서 한더위에 지친 몸을 선선한 가을바람에 적시기도 전에 강추위가 옷깃을 파고들고 살을 에워싸기에 가을의 실종(失踪)이 참으로 아쉽고, 특히 가을의 정취(情趣)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가을의 실종이 목을 매는 슬픔을 더하는데.
올해는 가을이 참 길다. 11월도 중순에 이르렀건만 아직 어디서 얼음이 얼었다는 뉴스를 들어 본적이 없다. 이렇게 가을이 길어 본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가을이 길어지니 생활의 피로감이 훨씬 줄어든다. 가을을 거두는 차가운 빗방울도 자주 흩뿌리지 않았으니, 오랫동안 주홍과 노랑으로 어깨동무한 낙엽들을 출퇴근길에 밟고 다니는 재미도 쏠쏠했다. 주말마다 찾아보는 가을 산의 정취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노릿한 콩고물, 보랏빛 팥고물에 선홍빛 고춧가루를 흠뻑 쏟아놓은 듯한 매혹적인 산, 그 위에 눈부시도록 짙은 파란 하늘과 그 하늘 가장자리를 가볍게 날아다니는 새털구름이 주는 자유롭고 상쾌한 기분, 가르마를 타고 내리는 선들 바람도 오랫동안 즐기고 싶은 가을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자연의 혜택이 그렇게 풍성(豊盛)하다 보니, 인간의 생활도 겉으로는 여유롭고 윤택해 보인다. 요즘 살아가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지만 말이다. 권력을 가진 자의 전형(專橫)이 용납되는 불평등한 사회 속에 살아가야 하는 힘없는 자의 속이 쓰리고, 부(富)의 세습과 삶의 질의 양극화, 공교육의 몰락과 사교육의 기승으로 더 이상 교육으로 신분 상승이 어려운 세상, 창의적인 인재 육성과는 무관한 대학 입시. 어디 힘든 일이 하나 둘인가. 그럼에도 사람들의 큰 아우성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부글부글 끓고 있으면서도 터지지 않는다. 주목할 만한 큰 사건도 없다. 이런 평화로움이 지속되는 모든 것은 가을이 주는 선물, 아름답고 달콤하고 여유로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 준 희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위정자(爲政者)의 노망(老妄)은 없을 터이지만, 혹 태평성대로 해석할까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디 한 구석이라고 믿을 수 있는 데가 없으니 말이다. 요즘도 FTA 문제로 싸움질이 한창이다. 하긴 언제 그 사람들이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한 적이 있는가? 안철수 바람이 멈추지 않고 계속 정치권의 회오리바람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 때문임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악다구니 써야 할 일이 많은데도 이런 모진 것들을 참아내게 하는 것은 오랫동안 계속되는 가을 의 혜택이거니 생각되고, 아마도 추위가 기승을 부리면 참았던 분노가 여기저기서 표출될 것이 아닐까 우려도 든다.
나는 가평군 설악면에 텃밭을 하나 가지고 있다.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좀 넓지만 내가 삽과 호미를 휘두를 만큼 힘이 미치는 것만 텃밭이고 나머지는 잔디밭이거나 잡풀 밭이다. 그 텃밭에 한 이태 동안은 김장 배추를 심지 않았다. 김장 배추 모종을 심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모종을 심으려면 절기를 잘 맞추어야 하는데, 그게 8월 하순경이다 보니, 뜨거운 한여름 뙤약볕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밭이랑을 일구어야 한다. 도구라야 삽과 괭이 뿐이니, 더위도 더위지만 노동의 부담이 너무 무겁고, 차 몰고 텃밭까지 가는 일도 보통은 넘는다. 지금은 경춘고속도로가 뻥 뚫려서 가는 시간은 적게 걸리지만, 민자고속도로라 요금소를 지날 때마다 입에서 나오는 욕을 제어하지 못해 처자식에게 민망한 일도 많다.
그러다가 무슨 마음이 들어선지 올해는 배추를 심었다. 배추는 심는 말 너무 더워 내가 죽을 것 같아 배추 모종을 심어 놓고 물도 주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다음 주에 가보니 다 타 죽어 버렸다. 올해도 그만 둘까 하다가 이랑을 갈고 퇴비를 뿌린 것이 너무 아까워 읍내에 나가 배추 모종을 사서 다시 100여 포기를 심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놈들이 잘 자랐다. 지난주에는 장모님이 같이 가 보시고는 몇 년 동안 지은 농사 중에서 이번이 가장 성공적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셨다.
그런데 이태 동안 그냥 두다가 이번에 배추를 심은 일이 결국 김장 배추 폭락에 일조(一助)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요즘 대형 마트에 가면 배추 한포기 500원도 하고 800원도 한단다. 100포기 다 튼튼하게 자랐어도 농사꾼 배추 사다 먹으면 5만원이면 된다니, 집에서 텃밭까지 두 번만 갔다 오면 승용차 기름 값도 그 정도는 든다. 모종 값 퇴비 값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도무지 원가 계산이 안 된다. 농사일로 밥 먹고 사는 나도 한숨이 나오는데, 농민들의 깊은 한숨이야 감히 말로 표현이나 할 수 있겠나 싶다.
농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나는 싱글벙글 좋다. 이슬 머금고 서리 맞으면서 자라는 이놈들이 너무 탐스럽다. 5백 원이든 8백 원이든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 놈들을 돈으로 따질 수가 없다. 밭에 갔다 온 날은 행복감이 가슴으로 확 밀려든다. 저녁 잠자리에 누우면 속 빛은 노랗고 바깥 빛은 은은한 연두와 진한 초록에 섞인 그 아름다운 배추의 자태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황홀함에 빨리 잠 못 이루는 적도 없지 않다.
올해는 추위가 늦게 찾아오니 조금이라도 더 자랄 수 있어서 좋다. 더구나 작은 아들놈의 대학 입학 수시 논술고사가 이달 중순까지 있어서 김장하려고 잡은 날이 11월 하순으로 늦어졌다. 시험이 끝나야 김장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있고, 아들놈의 막힘도 빌려 쓸 수 있어서 더욱 좋다. 그런데 걱정이 많다. 갑자기 강추위가 찾아와서 모두 얼어 죽어 버리면 어쩌나. 김장하기로 한 그날까지 놈들이 늠름하게 버티어 주어야 할 텐데. 그러나 우리 텃밭 배추는 강추위가 갑자기 몰아쳐도 김장하는 그날까지 잘 버틸 것이다. 자식만큼 애지중지 하는 주인의 정성을 먹고 자라난 배추라서 믿음이 간다. 배추야, 김장하는 그날까지 튼튼하게 버티어 다오.
세상살이 어렵다고 해도 사실은 참 별것이 아니다. 마트에서 8백원밖에 안 하는 배추지만 내 인생에서는 백만금에 해당하는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귀중한 것들이다. 행복과 즐거움은 재물에서 얻어지는 것은 분명히 아닌가 싶다. 내 마음속에 있는 행복을 끄집어내고, 내 곁에 있는 미물(微物)이라도 정을 주고 사랑으로 함께 하면 행복은 늘 그렇게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공포 이후 학생들에게 얻어맞는 교사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배추도 정성스럽게 키우면 자식처럼 정겹고 잘 자라는데, 제자 키우는 데 사랑하는 맘 좀만 더 가지면 그런 끔찍한 뉴스는 사라지지 않을까.(201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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