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나의이야기

뒤돌아보면 앞이 보인다

청오 2011. 11. 22. 17:31

 

 

 

뒤돌아보면 앞이 보인다



  요즘 TV드라마 중에서 침해로 고통 받고 있는 젊은 여인과 이를 사랑하는 흑기사 같은 남자의 이야기가 한참 재미를 끌고 있다. 여주인공이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점차 상실해 가는 난치병에 걸려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노령 이전에 생기는 초로치매(初老癡呆)의 주원인이고, 또한 노인성치매의 주요 요인 중의 하나로, 이 병에 걸리면 언어장애, 심한 단기 기억상실, 정신기능의 상실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마다 장난삼아서라도 혹 자신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게 아닌지 두려워진다고들 한다.

  나도 나이가 오십을 넘어서더니 정말 기억력의 쇠퇴가 너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고, 늘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당황할 때가 많다. 읽은 책의 내용을 기억해 내는 일은 더욱 힘들다. 금방 읽고도 앞장의 내용이 기억에 없어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책을 읽는 일이 허다하니, 약이라도 먹고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늘 마음이 쓰이던 차에 이런 드라마를 보게 되니, 더욱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 선조들은 인생에 있어서 5가지 복이라는 수(壽), 부(富), 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중에 오래 사는 것을 뜻하는 수(壽)를 으뜸으로 쳐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늙어가면서 마지막 순서에 있기는 하지만 고종명(考終命)이라는 죽는 일에 가장 관심을 갖는다. 죽는 일 자체가 두렵기도 하고 싫기도 한 일이겠지만,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면 깔끔하게 죽고 싶은 것이 현실적인 욕망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치매나 중풍 같은 것에 걸려 자신의 고통은 물론 자식들에게까지 장기간 민폐를 끼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정말 괴롭고도 힘든 일이 된다.     

  다시는 돌아볼 수 없고 기억해 낼 수 없다는 것, 보이지 않는 만큼이나 답답한 일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되돌아보는 과거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관대한 마음은 있다. 과거에 느꼈던 그 치열함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무디어 지고, 희미해지면서 관대해 지는 것이다. 안경을 벗으면 얼굴 자국에 묻은 티가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더 멋있어 보이는 것에 비견한다면 좀 비루한 비유인가? 

  증자(曾子)는 논어에서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고 했다. 사람은 불완전한 동물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도 성인(聖人)의 길에 들어서기 어렵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미래도 보인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것도 읽기를 쓰는 것도 결국 인생을 뒤돌아보는 행위이고, 결국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방편으로 삼는 일이다. 그런데 자신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부류로 사람들은 정치인을 꼽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집단이 정치인들의 집단이라고 하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가을은 감사(感謝)의 계절이고 감사(監査)의 계절이다. 한 해 동안 땀 흘려 지은 농사의 풍요로운 결실을 거두게 해 준 자연에 감사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공무원들에게는 국정감사와 각종 행정사무감사 등이 집중되어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농부들의 추수감사는 기분 좋은 일이지만, 감사장(監査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기분은 언짢다 못해 불쾌하기 짝이 없다. 나름대로 꼿꼿하게 살아왔다고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티 없는 사람이 드물다. 감사장에서 공무원을 호통 치는 그들의 순도(純度)는 과연 몇 도나 될까?

  사람들은 가장 부패하고 권력을 남용하고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고 배려도 없는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죽인지 밥인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도 일관된 철학도 없이 인기영합적인 발언, 매스컴 편향적인 질문 공세와 질책, 하대(下待)와 비인간적인 모욕에 가까운 질책과 호통은 과히 도를 넘은 경우가 많다. 도대체 자기는 얼마나 잘 났기에 저렇게 오만한 것인지, 오만해야만 감사를 잘 하는 일인지.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감사자나 피감자나 개개인의 인권은 중요하다. 서로가 존중되어야 할 존재다. 고함 소리만 크다고 나랏일이 바로잡혀 지는 일은 아닌데, 큰 틀을 보고 정확하게 조목조목 따지는 감사를 한다면 공무원들도 긴장하게 되고, 함부로 수감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할 것인데, 주제도 없이 소리만 쳐대고 일방적인 이야기만 쏟아놓으니 긴장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대답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대강 예,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는 몇 마디만 할 줄 알면 감사는 그만인 것이다. 국민이 무식한 고함만 치라고 준 힘이 아니라 공무원들의 살림을 제대로 감시하라고 권력을 준 것임을 왜 모를까 마는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뒤돌아보지 못하는 태도가 아쉽다.

  선거철에 되면 그들은 국민들을 제왕으로 대접한다.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듣고, 굽실거리면서도 늘 즐거운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면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킬까, 이익이 되는 일에 관여할까 골몰하게 된다. 한국 사람들은 쉽게 과거를 망각하는 증세가 있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또 다시 가능해 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냉철히 지난 4년을 뒤돌아보고 투표해야 한국의 미래도 보인다.

   과거는 미래의 세상을 지켜 나가는 일뿐만 아니라 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미래가 보인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다. 그래서 역지사지도 필요하고 새옹지마의 인생철학도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하다. 과거의 실패 사례를 들여다보면서 미래의 성공적인 비전을 발견해 낼 수 있고, 성공적인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예약해 낼 수 있게 된다. 뒤돌아보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비전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도 결국은 진흙탕 속에 빠지고 말 가능성이 짙다.

  교사를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이들의 갑작스런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지식을 잘못 가르친 것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의 진실하지 못한 눈으로 그들의 진실을 바라보아야 했던 일이다. 또한 나 자신이 그들이 닮고 싶은 인간적인 모델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짙어질 때 자신감도 떨어지고 마음에 엉기는 부담도 떼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을 인생의 모델로 여기지도 않는다. 감사하는 마음도 추종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잘 가르치면 당연한 것이고 잘못 가르치면 온갖 욕을 해대는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순수하지 못한 행동을 비난하려는 태도를 모든 것을 만회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 왔는지 좀 뒤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입시 중심으로, 강의식 방법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단순한 지식을 가르쳐 놓고 창의적이고 인간성 있는 미래지향적인 학생들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정치인들도 그런 반성적 사고를 좀 해야 할 듯하다. 과거를 좀 뒤돌아보아야 한다. 국회의원이, 시의원이 되겠다고 한 표 한 표를 얻기 위해 정말이지 자신을 다 버렸던 그런 초심을 다시 읽어야 미래도 보이는 법이다. 자신의 이익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좀 넓고 대범하게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는 예술이라고 하는데, 자못 테러집단을 보는 듯하고 시정잡배들의 투기를 보는 듯해서는 희망이 없다. 그러고도 감사철만 되면 참 대단한 인격자로 가장하여 멀쩡한 공무원들을 도리어 혼내는 한심한 모습은 버려야 한다. 교직원들이 학부모의 심정을 조금만이라도 헤아린다면 상호 신뢰하는 행복한 학교가 될 것이고, 정치인들도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참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1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