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나의이야기

주말에는 가정과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맡아라.

청오 2011. 12. 1. 18:17

 

 

 

주말에는 가정과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맡아라.


  사람이 사는 목적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해 보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목적에 해당하는 결론을 찾아내기는 참 어렵다. 삶의 존재 방식을 단순하게 분류하기도 어렵고 삶의 가치를 해석해 내기도 힘들며 사는 일 또한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닌 탓이다. 더욱이 태어나는 선택이 없기에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자신의 탓도 아니고 요즘 세상이 부의 불평등 소유로 계층 간의 갈등이 심해질 대로 심해진 형편이라, 잘 살고 싶어도 태생에 한계가 있으니 마음대로 되는 일도 사실은 없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미꾸라지도 났지만 용도 나는 시대였는데, 요즘은 미꾸라지도 없다. 잘못된 교육제도가 빚어낸 탓이라고 하지만 교육에만 화살을 돌리기는 어려울 듯싶고, 모든 분야에서 탐욕과 경쟁의 결과가 빚어낸 총체적인 산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돈 없는 부모 만난 아이들은 대학 가기도 힘들다고 하니, 제도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나 그렇다고 딱히 입시 제도의 문제라고만 말하기도 어렵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노는 일이라면 신명이 난다.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빈둥빈둥 놀고 싶고, 하고 싶은 일 실컷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인데, ‘놀아라.’ 하는 말은 얼마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이겠는가. 나는 어린 시절에 시골에 살았기에, 아니 도회지에 산 아이들도 그 시대에는 마찬가지였겠지만, 방과 후 교육이란 것이 없었으니,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일하는 어머니 주변을 맴돌고 있으면 “얘야, 밖에 나가 놀아라.”라는 말이 늘 따랐다. 물론 학교를 파하고 산길을 돌아서 귀가하는 도중에 놀 거리가 많아 동네가 까맣게 물들도록 집에 들어가지 않아서 빗자루 몽둥이에 혼난 적도 많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자진해서 나가 놀기도 어렵다. 자기 스케줄 관리를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스케줄을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가 놀아라.’라는 말은 아예 없는 말이 되었다. 틈나면 ‘먹어라’, ‘공부해라’, ‘학원 시간 늦지 마라’가 전부다. 학원 친구가 아니면 친구도 없고, 친구가 있어도 같이 놀아주는 친구는 더욱 없다. 그래서 ‘학원가서 놀아라.’고  하는 셈이 되었다. 놀이터는 텅텅 비었고 유아들과 보살피는 어른들의 독무대다. 그러니 옛날에는 배는 좀 고팠어도 눈물겹도록 신명나게 놀았던 우리 세대들이 요즘 아이들을 바라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놀아라.’해도 아이들이 놀지를 못한다. 어떻게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하는지 노는 법을 모른다. 생각해 보라, 우리 세대들은 어린 시절 얼마나 많은 노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면서 온 거리가 깜깜해 지도록 놀았는지. 놀려고 해도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으니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친구들과 만나도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도 모르고 재미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결국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 컴퓨터게임도 필요하다. 문제는 이것이 유일한 노는 법이다. 우리 시대에는 컴퓨터가 없었지만 만화방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만화방에 거의 혼자 가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몰려가서 웃고 낄낄거리고 장난치다 경고를 받아도 또 장난치고 놀았다.

  2012년부터 학교에도 주5일제가 전면 자율 도입된다고 한다. 전면 시행이 아니라 전면 자율 도입으로 한 이유는, 지역과 학교의 여건과 환경을 반영하여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자율적으로 시행 여부를 결정하라는 의미이긴 하지만, 교과부의 속셈이 너무 빤히 보이는 것 같아 유쾌하지 못하다. 주당 수업시수의 감축이 없다보니 결국 방학을 줄이지 않으면 하루에 7교시까지 효율성 없는 수업을 계속해야 하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수업 피로도는 더욱 가중될 것이니, 그렇지 않으려면 결국 방학을 줄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사회인이 아니라 학생이어서 정말 좋은 것은 무엇일까. 사고를 쳐도 사회가 관용을 베푸는 일, 돈을 벌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일이 좋은 일일지 모르겠지만, 역시 ‘방학’이라는 빈둥거릴 시간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주5일제 수업 한다니까 모두 기뻐했는데, 방학이 짧아진다고 하니 이거 아닌데 하는 교사와 학생이 많다고 한다.

  많이 놀아야 창의성도 생긴다. 우리 세대들이 별로 유익하지도 못한 주입식 교육으로 단순한 지식을 받았어도 대한민국을 과학과 창의성을 세계적으로 떨치는 나라로 올려놓지 않았는가. 이런 결과는 무슨 덕분이겠는가. 바로 참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연구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장난감도 만들어서 놀고 놀이 방법도 만들어서 놀았다. 그러니 창의성이 발달되지 않았겠는가. 자연과 함께 뒹굴고 즐겼으니 철학자와 예술가가 배출되지 않았겠는가? 혼자 놀지 않고 같이 놀았으니 소통과 배려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굶어도 같이 굶고, 보리밥이라도 먹게 되면 배터지게 같이 먹었으니 행복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없었다.    

  학기 중에 노는 시간을 내기는 어렵고 여러 문화나 생활 체험도 놀이도 어려우니, 방학이라도 더 늘려야 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방학을 줄일 수는 없다. 빈둥빈둥 놀더라도 놀아야 궁리(窮理)가 가능하다. 수학 문제 풀고 영어 단어만 외우면 미래에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 빈둥거리다가 심심하면 소설책도 읽고 만화책도 읽게 될 것이고, 더 놀다보면 참으로 잘 노는 법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친구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고 철학과 미술과 음악이 싹트고, 사회와 가정이 삭막해지지 않고 훈훈해 질 것이다. 

  그리고 주5일제 수업으로 학교에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된다. 토요 휴무일을 전면 실시하면 모든 학교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고 토요일에도 출근하여 진행해야 하는 부담이 만만하지 않다고 한다. 물론 아직 가정과 지역사회가 완전한 기능을 회복할 때까지 일정 부분 학교의 역할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단 시간에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는 주말에 학생들을 떠 앉을 수 있는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학교에만 의존한 교육을 이제 가정으로 지역사회로 돌려주기 위하여 주5일제 수업이 도입된다고 보는 것인데, 또 그들을 학교로 불러 와서 학교가 부담을 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주중과 학기 중에 학교와 교직원은 온갖 정성과 아이디어를 다하여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여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 그런 다음 주말에는 가정이나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 교사들도 쉬고 놀아야 한다. 그래야 가르치는 에너지가 생성되고 창의적인 발상이 떠오르고 학생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자기계발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방학도 있는데 주말까지 실컷 놀도록 한다면 배 아픈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 자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일이니 배가 아파도 참아야 한다. 교사들이 주말에 여유를 찾아야 창의적인 수업에 대한 구상도 하고 자기 자식들도 돌보고 평일에는 헌신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돌볼 아이가 없는 교사들은 주말에 학급이나 클럽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거나 체육 ․ 문화 ․ 봉사활동을 사제동행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의 형편이 좀 나은 집에서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체험과 봉사 활동, 취미 활동으로 건강한 주말을 보낼 수 있도록 책임을 지고, 부모가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집의 아이들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가 책임을 지고 아이들을 데리고 놀아야 한다. 구청이나 각종 지역 문화센터 등은 장삿속만 보이지 말고 어린들이 즐겁게 놀고 체험하고 봉사할 수 있는 무료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지속적으로 계발해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 들도록 해야 한다. 오면 오고 말면 말고 식이 아니라, 지역사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도록 해야 한다. 공부가 부족한 학생들도 주말에는 국․영․수 공부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교과공부는 평일에 학교에서 책임을 지고 가르쳐야 하는 일이다. 기초 지식이 부족하면 좀 밤늦도록이라도 방과 후 교육을 시키면 될 일이다.

  그리고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여야 한다. 한때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을 한답시고 책 몇 권 꼽아 둔 도서실을 만들더니 요즘에는 시들해진 것 같다.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다. 주말에도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실에서 영어․수학 공부에 매달려 있으니 도서실이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독서실이나 도서관의 학습 열람실만 붐비게 되었다. 또한 동네 도서관이 쾌적하고 자유롭게 책을 읽을 분위기도 못 된다. 좁기도 하고 안락한 의자도 없다. 특히 부모가 같이 독서하지 않으니, 독서 습관을 길들이기 어렵고 흥미를 붙여 주기도 어려워 유야무야 되는 것이다.

  법이 그렇게 생겼으니 학교도 주5일제 수업을 어쩔 수 없이 실시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주5일제의 정착을 위한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평일 수업시간과 학습 부담도 크 지는데, 주말까지 학원에, 영어 ․ 수학에 점령당한다면 아이들이 정말 불쌍해진다. 아이들이 불쌍해지고, 창의성도 없는 기계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면 이이들의 미래도 국가의 미래도 없게 된다. 주말과 방학만이라도 아이들의 삶이 즐겁고 행복하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자.[2011. 12. 1. 完]